데미안 / 헤르만 헤세 / 소담출판사



p74 나는 틀림없이 이것저것 상상할 수도 있고 무조건 북극에 가고 싶다든지 하는 공상을 할 수도 있지. 그러나 그 소원이 정말 내 자신의 내부에 충분히 깃들고, 나의 전 존재가 그것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고 강하게 바랄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네가 너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바를 시험하기가 무섭게 잘 될 것이고, 너의 의지를 잘 훈련된 망아지처럼 다룰 수가 있을 거야. 가령 내가 지금 목사님이 앞으로는 안경을 쓰지 않게끔 하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루어지지 않아. 단순한 장난에 불과할 뿐이니까. 지난 가을에 말이야. 나는 앞쪽에 있는 내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가졌었는데 그건 아주 잘 되었지. 그때 마침 이름의 알파벳 순으로 보아 내 앞에 앉아야하는 애가 나타난거야. 쭉 앓고 있던 그 애가 학교에 다시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리를 내주어야했어. 내가 비켜주었지. 그건 내 의지가 기회 잡을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야.




p82~83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자기에게 금지된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야하는거야. 실제 금지된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도 대악당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 그것은 단지 편의상에 문제에 불과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판정해 내는 데 안일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금지된 것에 복종하고 말지. 그에게는 그것이 쉽거든.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내부에서 그 금지된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단 말이야. 그들에게 금지되어진 일들을 다른 사람들은 매일 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허용되어진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금지되어 있는 일일 수도 있는 거야. 요컨대 사람은 각자 독자적이어야 하는 거지.




p125 예기치 않은 피난처를 나는 당시에 '우연히' 발견했다. 그러나 본래 우연이란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소망과 필연이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




p141 당신은 번번이 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 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어떤 흠모하는 신의 뜻과 일치되는 지를, 그들의 마음에 드는가를 생각하지 마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파멸해 가는 거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그저 안전한 땅 위를 걷게 되고 그러다가는 화석이 되어 버리는 거요.




p180 눈부신 빛의 상실은 유년 시절의 상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은 어느 정도 영혼의 자유와 성숙을 위해 이 사랑스러운 빛을 그 대가로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체념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이 단지 파묻히고 어둠에 싸여 있을 뿐이라는 것과 자유로운 사람이나 유년시절의 행복을 포기한 사람일지라도 이 세계가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소년다운 관찰의 내적인 전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황홀하게 느꼈다.




p188 표적을 지니고 있는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상스럽다든지 심지어는 미쳤다든가 위험스럽다고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깨달은 자, 혹은 깨닫고 있는 자들이었고 우리의 노력은 점차 완전해지는 깨달음을 위해 집중되었지만, 그 반면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행복에의 탐구는 그들의 의견이나 이상과 의무, 생활과 행복의 기준을 집단의 그것에 더욱 밀착시키려고 애쓰는 데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곳에도 노력이 있었고, 힘과 위대함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기에는 우리들 표적을 지닌 자들은 새로운 것, 고립된 것, 미래의 것을 지향하는 자연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반하여 그들은 다만 완고한 고집의 의지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류란 -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사랑해마지않는 인류란 - 유지되고 보호되어져야 할 완성된 그 무엇이었다.




p216~217 나는 떠나야 돼.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게 되겠지  그럴 땐 자기 자신의 내부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네  그리고 이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 역시 내게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때떄로 어두운 거울 속,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그곳, 내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젠 완전히 데미안과 같은, 내 친구이자 지도자인 데미안과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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